그곳.....박물관 그리고

춘천박물관

착희 2009. 12. 27. 02:05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을 강릉시립박물관에서 복제품으로 보았었다.

그 진품이 춘천박물관에 있다고 해서

호반이 아름다운 춘천으로 갔다.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국보 124호

강릉에서 복제품을 보았는데 진품을 보니

대리석의 빗깔과 세월의 흔적들 그리고 원통형의 얼굴모습과 미소 손의 흐름이나 모양이 매우 아름다웠다.

 높이 92.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원래 강원도 강릉시 남항진동에 있었다고 하며 현재 강릉시청에 있는 또다른 한송사지석불상(보물 제81호)과 짝을 이루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에는 원통형 관을 쓰고 있는데 그 위로 보계(寶髻)가 솟아 있고, 보발(寶髮)은 양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얼굴은 둥글고 통통한 편으로 눈은 반쯤 뜨고 있으며, 눈꼬리는 길고 코는 약간 매부리코이다. 이마에는 커다란 백호공(白毫孔)이 있는데 수정이 조금 남아 있고, 귀는 양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띠처럼 두껍게 새겨져 있고 3줄의 영락이 가슴까지 내려와 있으며, 두 팔에는 상하로 팔찌가 장식되어 있다. 천의(天衣)는 양어깨에 걸쳐 아래로 내려왔는데 부드럽고 선명한 옷주름이 뒷면에까지 자세히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에는 연꽃을 쥐고 있고, 왼손은 둘째 손가락만 곧게 편 독특한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보살상은 반원형의 받침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데, 오른쪽 다리는 안으로 하고 왼쪽 다리는 밖으로 두는 좌서상(左舒相)을 취하고 있으며, 반원형 받침은 원래 대좌에 끼워넣기 위한 대좌의 촉으로 추정된다. 이 상은 통일신라시대 석굴암 감실(龕室)의 보살상 전통을 따른 것으로 전체적인 조각수법이 완숙하면서도 정교하다. 이 상에 보이는 원통형의 관이나 원만한 얼굴 등은 근처에 있는 신복사지석불좌상(보물 제84호)과 월정사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에서도 보이므로, 특히 강릉지역에서 유행했던 보살 형식으로 추정된다. 이 보살상은 1912년 일본으로 반출되었던 것을 1966년 5월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영월 창령사지에서 출토된 나한상의 일부이다.

500나한상중 300여개의 나한상을 출토하였는데 손상이 심하여 보존되는 나한상이 몇분 안된다고 한다.

돌에 조각하여 만든 나한상을 이제까지는 만나보지 못하였다.

이곳에서 매우 해학적이고 다양한 표정과 친근감 있는 모습들에 한참을 바라보았다.

 

 

 

 

 철조비로자나불

 

 

석조비로자나불 좌상

고려초기 원주지역에서 제작된 불상이란다.

둥근 얼굴에 아들 낳는다는 미신 때문에 훼손된 코와 장난스럽게 살짝 벌리고 있는 입이 매우 독특하였다.

 

 

 

 왕실에서 태를 항아리에 넣어 산봉우리에 안치하던 풍습은 조선시대에 지속되었다. 태를 담는 항아리에는 내호, 외호가 있어 지석誌石과 함께 석함 안에 안치되어 땅속에 묻게 된다. 지상에는 태비를 곁에 세웠다. 왕녀복란태실은 원주시 태장동에 있는 왕녀 복란의 것이다.

 

 

황희정승의 여러 초상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