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 찾아서(수도권)

안성시 칠현산 칠장사

착희 2010. 1. 20. 23:04

경기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4

 

 

 

 

 

 

 

 

 

 

 

 

 

 

 칠장사오불회괘불탱(七長寺五佛會掛佛幀)

국보  제296호

 

 

3단구도로 도솔천궁을 묘사한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칠장사 괘불은 길이 6.56m, 폭 4.04m 크기로 구름을 이용하여 상·중·하 3단으로 구분되었다.

맨 윗부분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불과 노사나불이 좌우에 모셔진 삼신불을 묘사하고 있고, 중간은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여러 보살들이 있어 삼세불을 표현하였으며, 맨 아래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그려져 수미산 정상의 도솔천궁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3단 배치는 예배자들에게 삼신불과 삼세불의 세계를 통해 진리를 깨우치게 하고,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의 구원으로 도솔천궁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괘불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겠다.

채색은 녹색을 주로 하고 황색과 황토색을 대비시켜 다소 어두워 보이나, 옷 처리를 붉은색으로 하여 경쾌함을 느낄 수 있다.

이 괘불은 조선 인조 6년(1628)에 법형(法浻)이 그린 것으로 괘불함 없이 종이에 싸서 대웅전에 보관하고 있다. 이 괘불에서 보이는 단아하고 세련된 인물의 형태와 짜임새 있는

 

칠장사삼불회괘불탱(七長寺三佛會掛佛幀)

보물  제1256호

 

 

영축산에서 석가가 설법하는 모습을 묘사한 영산회상도 이다.

화면 구성은 석가불을 중심으로 한 하단과 노사나불과 아미타불이 있는 상단으로 구성된다. 사각형의 광배를 한 석가불의 주위를 팔대 보살과 십대제자, 사천왕 등이 에워싸고 있는 형상이다. 대좌 아래에는 사리불이 석가의 설법을 듣고 있다. 상단에는 아미타불과 보살처럼 화려한 보관을 쓴 노사나불이 사래보살에 의해 둘려 쌓여 있다. 아미타불과 노사나불 사이에는 보탑을 두어 화면을 구분하고 있다. 보탑 위로 반원형의 큰 광배 안에 9구의 보살을 중심으로 천상세계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숙종 36년(1710)에 그려진 이 괘불은 석가불이 그려진 하단 단독으로도 영산회상도를 묘사할 수 있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주며, 상단과 합쳐서는 삼신불을 간략하게 표현한 구성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간략화한 구성 방식은 조선 후기에 유행하는 방법으로 이 괘불은 이런 구성을 잘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이다.

 

칠장사의 유래
7명의 도적이 각자 샘물에서 금 바가지를 가지다가 서로에게 얘기하지 않고 분명히 잘 간수한다고
야무지게 챙겨 넣었던 금바가지가 간곳이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분명히 가지고 왔는데.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마지막 금 바가지를 가져간 도적은 순간적 의구심은 어떤 두려움으로 번지고 있었다.  내가 천벌을 맏을 모양이야."
두려운 표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털어 내는 사내의 말 끝에 다른 사내들은 하나같이 뒤로 나자빠질 듯 놀랐다.
잘못을 실토하는 사내의 일이 사실은 모든 사내들의 일이었던 것이다.
"나도 그랬어. 그래서 죄 짓고 사는 놈이 기어이 천벌을 받는 것 같아. 무서워서 이렇게 온 거야."
일곱 사내가 다 같은 일을 겪었고 한결같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이제 천벌을 두려워 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제 우리는 사람들이 있는 평지에서 살 수가 없을 거야.
저 아미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 두번 다시 세상에 나오지 말아야 할거야."
묵직한 분위기 속에 그런저런 말들을 주고 받는 가운데 한 사내가 불쑥 이상한 제안을 했다.
"아미산에 들어가야 한다니까 생각이 나는 것이 있구먼. 낮에 샘을 본 그 근처에 옛날부터 절이 있지 않은가.
그 절에 요새 한 스님이 오셨는데 그 어른의 도력이 그렇게 높으시다는구만... 
내일 날이 밝으면 그 아미산의 절을 찾아 스님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기로 했다.
아미산의 절에 있다는 스님은 정현(鼎賢)이라는 노장으로 일찌기 광교사(光敎寺)로 출가하여 공부를 했는데
그 영민함이 남달라 스승들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었다.
정현 스님은 아미산 칠장사(漆長寺)에서 융철(融哲) 노장으로부터 유가학(瑜伽學)을 정통으로 배웠을뿐 아니라
미륵사의 승과 오교대선에도 합격해 이름을 떨쳤다.
거기에 현종 덕종 문종으로 이어지는 왕가의 존경을 받아 지금의 문종대에는 왕사를 거쳐 국사를 지내다가 나이들어
이승 인연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그가 유가를 공부한 칠장사로 돌아와 있는 참이었다.
"스님. 스님 계십니까?"
일곱의 시커먼 사내들이 더위를 훠이 훠이 털어내며 조심스럽게 스님을 찾아 왓다.
기다렸다는 듯이 지긋한 눈길로 맞이하는 노스님 앞에 엎드린 일곱 사내는 한 입인 듯 어제의 기이한 사건을 털어 놓고
"그저 한 번만 자비를 베푸신다면 다시는 못된 짓 아니하고 착하게 살겠습니다"라며 말꼬리를 낮췄다.
"그래. 자네들이 그런 일을 당했다니 내 보건데 부처님의 자비가 이미 그대들 가슴을 넘치도록 충만해 있음 일세."
뜻 밖의 말을 들은 사내들이 동시에 노스님을 쳐다보는 순간 노스님은 벽력 같이 소리쳤다.
"이 사람들아. 잘못된 과거를 다 내개 주고 나가거라. 어서 그 잘못된 과거를 꺼내 봐."
그 우렁찬 요구에 질린 사내들.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그 쩡쩡한 목소리의 여운이 아미산을 휘감는 듯한 침묵 속에서
사내들은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과거생의 깊은 불연(佛緣)이 한꺼번에 열렸던 것일까. 일곱 사내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깍고 출가를 했다.
그리고 노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열심히 수행하여 마침내 나한의 경지에 들어섰다.
일곱의 도둑이 과거생의 인연을 돌이켜 드디어 도를 이룬 일을 기려 사람들은 아미산을 칠현산(七賢山)이라 불렀고
절 이름도 칠장사(七長寺)라 고쳐 썼다. 노스님은 입적 후 나라로부터 혜소국사(慧炤國師)란 시호를 받았다.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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