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멋.....궁,릉,묘

탈해왕릉

착희 2010. 4. 4. 22:08

 경북 경주시  동천동 산17

신라탈해왕릉(新羅脫海王陵)

사적  제174호

 

아름다운 소나무가 가득 들어 차 있는 탈해왕릉

보는것 만으로도 그 멋에 취한다.

옆지기는 탈해왕릉 뒤에 새겨진 아버님의 흔적을 찾고 있다.

경주군수로 계실때 이 탈해왕릉비를 세웠다 한다.

그래서 비석 뒤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경주 시가지 서북방 표암<瓢巖> 근처에 위치하며 송림<松林>으로 둘러싸여 있다. 릉<陵> 전면<前面>은 평지이지만 후면<後面>은 얕은 경사를 이루고 있다.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서 지름 14.3m, 높이 4.5m이다. 봉분 주위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으며, 호석<護石>을 설치했던 흔적도 외형상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봉분의 전면에 놓여 있는 상석<床石>은 후대에 설치한 것이다. 신라 제4대 왕인 탈해이사금<脫解尼師金>(재위<在位> 57-80)은 석씨<昔氏>로 토해이사금<吐解尼師金>이라고도 하며, 왕비는 아효부인<阿孝夫人>이다. 유리왕<琉璃王>의 유언에 따라 62세에 왕이 되었는데 난생설화<卵生說話>를 가지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본래 왜국<倭國> 동북 1천여리에 위치한 다파나국<多婆那國> 출신으로 그 나라 왕비<王妃>가 알을 낳으니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겨 비단에 싸서 보물과 함께 궤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 처음에 금관국(김해)<金官國(金海)>에 닿았으나 아무도 거두지 않았다. 계속 표류하던 궤는 진한<辰韓>의 아진포<阿珍浦>에 닿았고, 한 노파가 거두어 키웠는데 처음 궤짝이 떠올 때 까치 한 마리가 따라다니며 울었다고 하여 까치 작<鵲>자에서 조<鳥>를 떼어버리고 석<昔>으로 성을 삼고 아이가 궤를 풀어 나왔다 하여 이름을 탈해<脫解>라 하였다 한다. 그가 자라서 석<昔>씨의 시조로서 신라 최초의 석씨 왕<昔氏 王>이 되었다. 기록에는 재위 24년에 왕이 돌아가니 성<城> 북쪽 양정구<壤井丘>에 장사지냈다고도 하고 또는 소천구<疏川丘> 속에 장사지냈다고도 하였으나 양정구<壤井丘>나 소천구<疏川丘>의 위치는 알 수 없다. 신라에서 탈해왕<脫解王> 시기에 이와 같은 봉토분<封土墳>은 출현하지 않았으며 그 위치로 보아 매장주체는 횡혈식 석실<橫穴式 石室>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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