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찻집 茶康山房

다강산방 수필

착희 2005. 4. 7. 22:15

   소한 추위가 매섭게 후려치는 날 우리는 목적지도 없이 길을 떠났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가 보자 하며 나섰다가 며칠 전 한 친지에게서 
추천 받은 찻집이 떠올라 이름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그 집을 찾아 나섰다. 
청도 가는 방향으로 쭈욱 가서 헐티재를 넘으면 이내 그 집의 안내판이 
나온다던 말을 조아리며 일단 그 부근까지는 거침없이 달려갔다. 
이제 속도를 늦추어서 오른쪽 길가 간판들을 낱낱이 훑어보며 천천히 지나갔다.
자그마한 나무판으로 된 이정표를 어렵사리 찾아내었다. 
자동차가 들어가지 못하니 걸어오라고 덧붙여 쓰여져 있어 
비로소 똑바로 찾았음을 알았다. 두리번거리던 우리는 농로를 낀 
그 운치 있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산바람이 차갑게 스쳤지만 오랜만에 흙길을 걸어서인지 
발 밑에 느껴지는 감촉이 참으로 좋았다.
다정한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거닐기에 딱 맞을 폭의 외길이 이어졌고 
약간 미끄러지는 듯한 내리막길을 한참 가니 외길은 심심한지 
친구 같은 길을 데리고 몇 갈래로 갈라서서 마중 나와 있다.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고 있을 때 '사사삭 사사삭' 
대숲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개울물이 내려오고 굵은 돌들이 버텨 선 그 곳에 나지막한 찻집이 자리잡고 있다. 
마침 저녁노을까지 차를 마시고 싶은지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여져 있다. 
하얀 진돗개는 영리한 탓인지 입소리고 어루면서 다가서니 
금세 꼬리를 흔들며 반겨 준다. 계단을 오르기 전에 듬직한 산을 닮은 분이 
주인인 듯 나와서 우리를 맞이해 준다.
 안에는 예닐곱 명의 손님들이 떡판으로 꾸민 차상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잇다.
 우리도 그 안쪽에 끼어 앉았다. 실내는 비교적 좁은 공간이었지만 
도예품이 빼곡이 들어차 있어 구경거리가 많은 탓인지 좁지 않게 여겨졌다. 
 굵은 마 헝겊으로 만든 차림표에 눈길을 쏟고 있는데 그 집 안주인이 
사뿐 걸음으로 다가 앉는다. 가끔씩 산을 오르다 보면 하나 꾸밈도 없이 
그냥 향기를 흩날리는 산기슭의 야생초를 닮은 듯하다.
 우리는 그 곳에서 온갖 상념을 다 떨쳐내고 빈 마음으로 앉아 있엇다. 
주인은 다시 우리의 곁으로 다가와서 그림 사진 몇 점을 내밀며 설명한다. 
어느 화가가 여기 이 찻집에서 본 바깥 풍경을 수묵화로 그려 
전시회를 하게 되었다며 그 위치에서 밖을 한 번 내다보라고 친절히 주문한다. 
밖은 보이는 그대로가 한폭의 산수화다. 큰 바위 사이로 흐르던 물이 얼어서 
얼음 계곡이 된 것과 겨울 산의 묵묵한 어우러짐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주인과의 대화가 계속되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어려운 고비가 있는 법. 
이렇게 아름다운 찻집을 만들기까지의 우여곡절을 풀어 내었고 우리는 
그의 진지하고 솔직한 얘기에 매료되어 그 집이 점점 더 귀하게 보엿다.
  그 찻집은 여느 찻집과는 달랐다. 우선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꼭꼭 숨어 있는 점. 걷기가 귀찮은 사람은 아예 오지 말라는듯 타박타박 
걸어오는 손님만 받아 주는 점이 좋았다. 게다가 덤으로 또 얻을 수 잇는 것이 
몇 있다. 안주인이 정성으로 보듬어 키운 야생초 작품을 감상할 수 잇다는 것. 
주물럭 화분에 이끼와 함께 자라난 그 풀들은 화장기 하나 없이도 
참한 안주인과 똑같아 보인다. 차와 함께 내어놓은 볶은 콩 한줌과 
솔잎을 곁들인 강정 한 접시도 차 맛을 돋구어 주는 데 한몫을 한다.
  잇속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주인 부부에게서 우리는 색다르게 
사는 법을 배웠다. 세상사 잊어버리고 산사람으로 살아가는 그 분들을 
가슴속에 새겨 넣고 밖으로 나왔다. 밤바람에 콧등이 쨍해져도 맑고 개운한 
밤 공기라서 더 좋아진다. '쉬쉬쉭 쉬쉬쉭' 바람에 일렁이는 대숲의 노래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온다.
  달덩이가 내려앉은 듯한 가로등 몇을 지나 큰길로 올라섰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도 욕심 없이 살아 보자고 되뇌어 보았다.
그러나 현란한 불빛의 도심으로 접어드니 벌써 그 마음은 점점 사그라진다.
  그들처럼 살 수 있음에는 우리가 ㅔ아리지 못할 아픔을 견뎌냈을 테고 
수많은 세월 동안 준비된 의지가 녹아 있으리라 짐작이 간다. 
그 부부가 남다른 철학을 가지고 사는 것 만큼이나 그 이면에는 
겉잡을 수 없는 회오리바람이 얼마나 지나갔을지. 그걸 얼마나 굳건히 감내했을지
우린 감히 짐작도 못하는 게 아닐까.
  D산방 - 그 곳에서 우리는 마음까지 맑게 하는 몇 잔의 차를 마시며 
도예품을 감상하며 산과 계곡을 바라보며 야생초를 들어다 보며 기쁨을 안고 왔다.
  새벽부터 함박눈이 흩뿌린다. 이런 날엔 하얗게 얼어붙은 헐티재를 넘어가기 
힘들 것 같아서 그 곳으로 쩍 나서지 못한다. 손님들의 아쉬운 마음이 되레 
주인 부부를 편히 쉬게 하리라. 행여 찾는 이 없어도 대숲의 노래와 
진돗개의 재롱 속에 하루해가 저물지 알 수 없다.
  애달아 내려다보던 하늘, 지나가던 눈바람이 그 집 앞을 기웃거리겠지. 
어쩌면 잠시 들어가 시린 몸을 녹이며 쉬어 가겠지.
                     영남수필  김경숙
                       2001년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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