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 찾아서(전남)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外

착희 2007. 2. 21. 22:22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5층석탑 (국보 289호)

석탑의 정확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지만

탑주변에서 "왕궁사" "대관" 등의 명문기와가 수습되어

궁성과 관련된 사찰이 건립되는 과정에서 축조된것으로 보는 견해가있다.

또, 탑 해체 복원시 제1층 옥개석 중앙과 기단부에서

금제 금판경과 사리함, 청동불상등이 수습되어 국보 제 123호로 지정되었는데,

이들 유물이 "관세음 음험기"에 나오는

제석사지 칠층목탑 내의 유물과 같은 종류이어서

제석사지 목탑과 관련되어 건립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특징으로는 백제 석탑양식을 충실히 따른 통일신라 말 또는 고려초기의 석탑이며,

석탑 하부에서 백제시대 판축이 확인되어

백제 시대 목탑 또는 건물지가 있던것으로 판단된다.

 

 

 

 

 

 

 

 유물관에서..(국보 제 123호)

 

 

 

 

 요강

전래석? 

 

 발굴된 파편들..

 

익산 고도리 석불입상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金馬面) 동고도리(東古都里)에 있는 2개의 화강암제 입상. 높이 424㎝. 고려시대 작품으로 옥룡천(玉龍川)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사다리꼴 돌기둥이나 머리에는 파주용미리석불입상과 같은 사각형의 높은 관(冠)을 쓰고, 그 위에 한 겹의 사각형 보개(寶蓋)가 있다.

 

 

대좌(臺座)는 신체보다 약간 커 앞으로 나와 있고

몸통은 사다리꼴의 사면체 돌기둥에 얕은 음각선으로

통견(通肩)과 손·팔의 일부를 표현하고 있다.

얼굴은 몸통의 연장으로 사각형이나 조금 튀어나온 턱이 몸통과 얼굴을 구분하고 있다.

얼굴 표정은 몸통과 마찬가지로 음각선으로 처리하여 괴람감은 없지만 차분한 모습을 띠고 있다.

전체적으로 불상이라기보다는 무속석상인 듯하다.

 

 이 상들의 조각 수법은 단순하고 소극적이어서 자세한 고찰은 어렵지만

관과 보개의 모습으로 보아

관촉사(灌燭寺)나 대조사(大鳥寺)의 미륵불상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성격과 배치방법이 특이한 불상이다. 보물 제46호.

 

높이 4.2m로 700m의 거리를 두고 마주 서 있는 2구의 석조 입상은

토속적인 수호신의 표정을 나타내고 있어,

속칭 "인석"이라고 불린다.

고려 시대 작품으로 금마고을을 지키는 동호신(洞護神)이라 보고 있다.

 

실제로 보면 너무 아름다운 석불입상

 

동고도리 석불입상 (보물 제 46호)

 

 

 서고도리 석불입상

 

 

 

 

 왜 이리 멀리 마주보며 서 있을까???????????????????????????

 익산 쌍릉

 

익산시 석왕동에 자리하고 있는 백제시대 고분으로

남북으로 두 기의 봉토분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쌍릉이라고 부른다.

내부 구조는 백제 말기의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橫穴式 石室墳))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봉분이나 석실의 크기로 보아 상대적으로 큰 북쪽의 것을 대왕릉이라 하고,

 남쪽의 것은 소왕릉이라고 부른다.

크기는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원래는 두 기 모두 원형의 봉토분으로 봉분 이외에 별다른 장식이
없었는데, 최근에 석상(石床), 장명등(長明燈), 석수(石獸) 등을 봉토 앞쪽에 설치하였다.

이 고분은 일찍이 1916년에 일인(日人) 야쓰이(곡정제일(谷井濟一)에 의해 내부가 조사되었다.
당시의 조사에 의하면 대왕릉에는 봉토가 지름 30m·높이 5m 정도의 규모였으며, 소왕릉에는 지름
24m, 높이 3.5m 정도의 원분(圓墳)이었다. 둘다 내부는 판석조(板石造)의 굴식 돌방무덤이었는데,
대왕릉은 길이 3.8m, 너비 1.78m·높이 2.27m이고, 소왕릉은 길이 3.2m, 너비 1.3m·높이 1.7m의 크기였다. 널길(연도(羨道))은 남벽의 중앙에 마련되어 있으며, 대왕묘의 경우 널길의 규모는 너비 1m·높이 1.5m이고, 길이는 1m 정도이다. 널문(연문(羨門))과 널길의 입구는 판석(板石)을 세워 막고
있다. 네 벽면과 바닥, 그리고 천정은 모두 다듬은 판석(板石)으로 축조하고 있는데, 특히 양 측벽과 천정 사이에는 장대석을 안으로 기울어지게 끼워 단면 6각형의 괴임식 구조 형태를 하고 있다.
바닥의 중앙에는 바닥면보다 한 단 높은 널받침(관대(棺臺))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 널받침은 한 장의 판석으로 된 것으로, 길이 2.71m, 너비 0.85m의 크기이다.

조사 당시 고분은 이미 도굴되어 이렇다 할 유물은 남아 있지 않았는데, 다행히 대왕릉 안에서 부식(腐蝕)된 목관을 수습하였다. 복원 결과 목관은 바닥면보다 위쪽면이 약간 넓고, 뚜껑의 윗단면이 둥근 호형(弧形)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 목관에는 관못과 관고리가 달려
있으며, 관고리에는 8엽 연화문의 좌금구(座金具)가 있는 것도 확인되었으며 복원된 목관의 크기는 길이 2.4m, 너비 0.76m, 높이 0.7m 정도의 크기이다.

이 쌍릉은 출토 유물은 없지만 내부구조로 보아 백제 말기의 것임이 틀림없는데, 부근에 미륵사(彌勒寺)가 자리하고 있어서 미륵사(彌勒寺)를 창건한 백제 무왕(武王)과 그 왕비(王妃)인 선화공주(善化公主)의 무덤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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