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자매가 모였다.
사는게 뭣이 그렇게 바쁜지
일년에 한두번 보면 많이 본다.
모두들 세월따라 점점 엄마를 닮아 가는 모습을 보며
피붙이 란....그저 바라만 보아도 가슴 아린 존재가 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절 보러 다니는 나와는 달리
언니들은 만배나 백일기도 등
절에서 기도하는게 삶이 되어 살아간다.
그래서 모이면 절에 가는게 여행이다.
운문사 사리암을 가기로 하고
새벽에 길을 나섰는데
벚꽃이 만발해서 한껏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새벽 3시반 오후 5시반
하루 두번 법고가 울린다.
큰언니랑 어느 새벽녘 함께 한 법고 소리를 잊을수가 없다.
운문사대웅보전(雲門寺大雄寶殿)
보물 제835호
신라시대에 세운 운문사는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는데 지금의 절은 조선 숙종 44년(1718)에 있었던 네 번째 보수 때의 것이다. 대웅보전도 이때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기둥 사이의 간격을 넓게 잡아서 같은 규모의 건물보다 크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다포계 건물들과는 달리 장식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앞면에는 꽃무늬를 넣은 문을 달았는데, 특히 가운데 칸은 넓어 5짝 여닫이문을 달았다. 안쪽은 큰 기둥을 하나만 세워 넓고 탁 트인 공간을 꾸미고 있다. 천장의 가운데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미고 화려하게 채색해 놓았다.
건물의 짜임이 조선 중기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각 층의 기단에 기둥모양을 본떠 새기고, 특히 윗층 기단에는 8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놓았는데 모두 앉아 있는 모습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처마 밑이 수평을 이루며,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각 부분들이 차례로 올려져 있는데, 모두 본래의 것들이다.
기단의 가운데기둥이 아래층 기단에서는 2개이던 것이 윗층 기단에서는 1개로 줄어들고, 표면에 조각을 둔 점 등으로 보아 9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기단부가 몹시 부서져 무너지기 직전이던 것을 일제시대에 보수하였는데 이 때에 팔부중상 등 일부를 새로운 돌로 보충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만세루
운문사석조여래좌상(雲門寺石造如來坐像)
보물 제317호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에 모셔져 있는 높이 0.63m의 고려시대 석조여래좌상이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추고 있는 완전한 형태의 불상이지만, 호분이 두껍게 칠해져 세부표현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분명하다. 신체 비례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인데, 가는 눈썹·작은 눈·오똑한 코·작은 입 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평판적인 모습이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그 안에 비스듬히 표현된 내의이 보인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로 향하고 있고 왼손은 배꼽 부분에 놓여져 있는데, 손이 작고 표현이 섬세하지 못해 투박한 모습이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는 투박한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형식적인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매우 특이한 양식으로 주목된다. 맨 윗부분은 평면 타원형으로 14개의 연꽃잎이 새겨져 있고, 가운데는 6각형이며, 아랫부분은 긴 6각형에 18개의 연꽃잎이 표현되어 있다.
이 불상은 겉옷 안에 표현된 속옷, 전반적으로 투박해진 표현기법 등에서 9세기 불상을 계승한 10세기 초의 불상으로 보인다.
운문사사천왕석주(雲門寺四天王石柱)
보물 제318호
사천왕석주는 운문사 작압전(鵲鴨殿)안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의 좌우에 각각 2기씩 모두 4개가 돌기둥처럼 배치되어 있다. 원래의 위치는 아니고, 이곳에 세워진 벽돌탑의 1층 탑신 몸돌 4면에 모셔져 있던 것으로 보인다. 모두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으며, 머리 뒷쪽으로 둥근 광채를 띤 채 악귀를 발로 밟고 있다.
사천왕은 부처를 모시는 단의 사방을 지키기 위해 두는 방위신(方位神)의 성격을 띠는데, 동쪽이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이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이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이 다문천왕(多聞天王)이다.
이 4개의 사천왕상 돌기둥은 신체가 큰 반면, 돋을새김을 뚜렷하게 하지 않아 양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체구도 약해보이고 얼굴 생김새도 부드러운 것으로 보아 시대가 내려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880년에 만들어진 보조선사탑(普照禪師塔) 사천왕상이나 철감선사탑(澈鑑禪師塔) 사천왕상과 비슷하지만, 보다 크고 띠주름도 굵어지는 등 형식화된 면이 있어서 8세기 석굴암의 사천왕상과 비교하여 시대적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통일신라 후기 또는 후삼국시대인 900년경을 전후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짐작된다.
작압전 천장의 그림
비는 비받침, 비몸, 머릿돌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받침돌과 머릿돌이 없어진 상태이다. 다만 세 쪽으로 잘린 비몸만 복원되어 있다.
비의 앞면에는 그의 행적이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제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비가 깨어져 알 수 없으나, 국사가 입적한 다음해에 인종이 국사로 명하고, 윤언이에게 글을 짓게 하였다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대략 1145년 이후로 짐작된다.
바닥돌과 하나로 이루어진 아래받침돌에는 여덟 장의 잎을 새긴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그 위에 놓인 가운데기둥에는 아무런 꾸밈이 없으며, 윗받침돌에는 각 면마다 연꽃이 새겨져 있다. 화사석에는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마련해 두었다. 지붕돌은 경쾌한 모습이며, 꼭대기에는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 있다.
각 부분이 잘 균형을 이룬 우아한 모습의 통일신라시대 석등이다.
8각의 화사석(火舍石)에는 네 곳에 화창(火窓)이 있으며 옥개석(屋蓋石) 꼭대기에는 보주(寶珠)가 남아 있다. 석등의 높이는 2.58m이다.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석등이다.
높이 55㎝, 아가리 지름 19.5㎝, 몸지름 31㎝로 뚜껑 모서리 부분은 둥글게 표현하였고 위로 6장의 연꽃잎과 十자형으로 된 불꽃 모양이 있는 높은 손잡이가 달려있다.
어깨는 넓고 밑에 굽이 달린 항아리로 몸체의 좌우에는 손잡이 구실을 하는 굵은 고리가 달려 있다. 몸의 높이 33.5㎝에 비해 뚜껑 높이가 24㎝로 매우 높은 비율을 보이며, 특이한 뚜껑 손잡이 형태가 주목된다. 특히 뚜껑 손잡이의 불꽃 모양은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시대에 걸쳐 만든, 스님의 사리를 모시는 부도의 머리장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어서 그것과의 연관성이 짐작된다.
어깨 부분에 제작시기와 관련된 글이 쓰여 있는데 고려 문종 21년(1067)에 수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제작연대는 이보다 앞선 신라 말이나 고려 초가 아닌가 추정된다.
항아리 뚜껑에는 중앙에 높직한 꼭지가 있고 밑은 고복형(鼓腹形)의 지주(支柱)에 연판6엽(蓮瓣六葉)을 얹고 십자형(十字形)으로 화염문(火焰紋) 장식을 붙였다. 특히 십자화염문 장식법은 신라말~고려에 걸쳐 나타나는 부도(浮屠)의 상륜정상부(相輪頂上部)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항아리 전체의 색감은 흑색(黑色)이다. 용도는 알 수 없으나, 감로준(甘露樽)이라는 이름이 전하고 있어 불기(佛器)의 하나로 추정된다. 특히 어깨부분에는 21자의 명문(銘文)이 선각(線刻)되어 있는데, 이에 의하면 고려(高麗) 문종(文宗) 21년(1067)에 개조된 것으로 무게는 30근이었다고 한다. 이런 점으로 보아 항아리의 제작연대는 적어도 신라말∼고려초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도운문사비로자나삼신불회도(淸道 雲門寺 毘盧遮那三身佛會圖)
보물 제1613호
이 불화는 18세기 작품 중 삼신불을 한 화면에 배치하는 드문 형식의 삼신불회도로서 안정된 화면 구성과 균형 잡힌 인물표현, 적색과 녹색이 대비를 이루는 차분한 색감 등에서 18세기 불화의 높은 격조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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