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멋.....옛집

안동 소호헌

착희 2012. 2. 4. 07:30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보물 475호

 

이 건물은 중종때의 학자 함재 서해선생이 명종때 지은 별장이다.

정면 4칸 측변 2칸의 팔작지붕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한옥은 절제된 듯하지만 나름으로 세련된 멋이 있는듯 하다

 

 

 

 

 

 

 

 

 

 

 

동편 건물인 이 건물은

함재 서해의 아들 약봉 서성의 태실이다.

(펌) 

소호헌은 약봉(藥峯) 서성(徐渻)이 태어난 곳이다.

그의 아버지 서해(徐嶰)는 여말(麗末) 선초(鮮初)의 대학자 권근(權近)의 외손인 서거정(徐居正)의 형이다.

17세에 안동에 사는 고성이씨 집안으로 장가들어 퇴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23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 하나들 두었다.

 

서해(徐嶰, 1537~1559)의 부인 이씨는 약물을 잘못 써서 실명한 장님이었다.

서해는 그녀가 장님인 것을 모르고 혼인을 하게 되었으나, 혼례 날 신부집 가는 길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도 혼인을 파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쌓은 서해의 덕이 후손들에게 영화로 되돌아 왔다.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 라 하지 않던가? 

 

 

소호헌은 장인(丈人)이 그 사위를 위해 지어준 서재(書齋)였다.

조선 중종때 지은 맞배지붕과 팔작지붕이 조화를 이룬 특이한 건축물로 보물 제 427호로 지정된 주요 문화재다.

그 아들이 약봉(藥峯) 서성(徐渻)이다.

앞 못보는 고씨는 두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 떡과 술을 팔아 열심히 아들 뒷바라지를 한 덕으로, 서성은 선조 19년(1586) 문과에 급제하여 승승장구하였다.

조선조에서 유일하게 오도관찰사(五道觀察使)와 오조정승(五曺政丞)을 지냈고, 사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실(小室)을 두지 않은 청빈한 삶을 살았다.

  

약봉의 후손 중 과거 급제자는 문과 140명, 무과 106명으로 후손들의 자랑이 대단했다.

 

약봉의 어머니는 신사임당과 함께 조선조의 현모(賢母)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녀의 특이한 음식 솜씨는 자부(子婦)에게로 이어졌다.

그 맛 소문이 왕실에 까지 알려져 진상하기에 이르렀고, 선조임금이 그 맛에 감탄하여 약봉가(藥峯家)의 음식이니 약자(藥字)를 붙여 약과(藥果), 약식(藥食), 약주(藥酒)라 명하여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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